"상장사 15% 세 분기 안에 도산 가능성…선제적 구조조정 시급"

입력 2017-09-14 18:08:07 | 수정 2017-09-15 05:18:12 | 지면정보 2017-09-15 A24면
기업 구조혁신 포럼 - 한경·증권학회 공동주최

정부·채권은행 아닌 민간자본이 주도해야
해외선 사모펀드가 기업 구조혁신 주역 떠올라
한국성장금융 '기업구조혁신펀드' 역할 주목
한국경제신문사와 한국증권학회가 공동 주최한 ‘기업 구조혁신 포럼’이 14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진복 국회 정무위원장(앞줄 왼쪽부터), 고봉찬 한국증권학회 회장, 이동춘 한국성장금융 사장 등 참석자들이 개회사를 들은 후 박수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기사 이미지 보기

한국경제신문사와 한국증권학회가 공동 주최한 ‘기업 구조혁신 포럼’이 14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진복 국회 정무위원장(앞줄 왼쪽부터), 고봉찬 한국증권학회 회장, 이동춘 한국성장금융 사장 등 참석자들이 개회사를 들은 후 박수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글로벌 사모펀드(PEF)들이 1990년대에는 금융공학을 활용해 단순히 기업을 사고팔아 돈을 벌었다면, 2009년 이후로는 인수한 기업의 구조혁신을 통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진화했습니다.”

세계 3대 회계법인인 언스트앤영의 글렌 피터스 구조조정 담당 파트너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모펀드들이 기업 구조조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14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국경제신문사와 한국증권학회가 공동 주최해 열린 ‘기업 구조혁신 포럼’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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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구조조정의 중심축을 정부와 채권은행에서 자본시장으로 옮기자는 취지로 마련된 이날 포럼에는 이진복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사진)을 비롯해 기관투자가, 사모펀드 운용사, 증권사 관계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첫 번째 주제 발표자로 나선 피터스 파트너는 “유럽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이 대출을 줄이면서 PEF, 헤지펀드, 사모대출펀드(PDF) 등 이른바 ‘대체 자본 공급자’의 구조조정 시장 참여가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투자 회수에 집중하기 때문에 은행들에 비해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더 적극적”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피터스 파트너는 사모펀드들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은 △의사 결정이 빠르고 △법적 수단을 통해 반대 채권자를 압박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업계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은행 중심 구조조정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덴마크 해운업체 톰(Torm)의 회생을 자본시장이 주도한 구조조정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소개했다. 톰은 해운업황이 악화된 2011년부터 재무구조가 나빠졌다. 채권은행들은 채권 만기를 4~5년 연장했지만 출자전환이나 추가 자금 투입은 하지 않았다.

미국의 부실자산 투자 전문 사모펀드인 오크트리가 투자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오크트리는 일단 톰을 회생시킬 전략을 제시하며 채권은행들의 출자전환을 유도했다. 이후 해운회사들이 채권 상환을 위해 매물로 내놓은 선박을 대거 사들여 톰에 현물 출자했다. 이를 통해 톰의 지분을 60% 확보했다. 과도한 용선료로 경영이 악화됐던 톰은 자체 선박을 대거 보유한 우량 회사로 거듭났다.

두 번째 주제 발표에 나선 현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동시에 시장 메커니즘을 구조조정에 도입한 일본의 관민펀드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산업재생기구, 산업혁신기구 등 관민펀드를 14개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현 연구위원은 “1990년 초반 거품 붕괴 이후 많은 부실 채권을 가지게 된 일본 금융회사들은 기업을 회생시키는 것보다는 정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산업재생기구는 기업을 재생시키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취지에서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4년 동안 41개 회사의 회생을 지원하면서 ‘기업 구조조정은 청산이 아니라 재생’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구조조정 전문 컨설팅회사인 미국 알릭스 파트너스의 정영환 한국 대표는 “알릭스 파트너스가 개발한 기업부실화지수(CDI)를 보면 한국 상장사의 15%가 향후 세 분기 안에 도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한국은 경영진이 낙관적인 전망에 근거해 비현실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하는데다 노조와 정치권까지 가세해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구조조정 후 회사가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한 전략을 세운 후 빠르게 실행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며 “미국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제너럴모터스(GM)를 회생시키는 과정에서 파격적인 채무 재조정과 세금 혜택을 주면서 전기차 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도록 유도했다”고 소개했다.

서종군 한국성장금융 투자운용본부장은 “2010년 기업 구조조정에 민간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기업 재무안정 PEF 제도를 도입했지만, 지난 6월 말 현재 약정액은 5조8000억원으로 전체 PEF 대비 9%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성장금융이 8조원 규모로 조성할 예정인 기업구조혁신펀드가 자본시장 참여자들을 구조조정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패널 토론자로 참석한 김성조 금융위원회 제도개선과장은 “정부도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기업구조조정 펀드 등 민간이 구조조정을 주도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가다듬고 있다”고 말했다. 황치연 과학기술인공제회 기업투자실장은 “기업 구조조정 시장은 매수자 우위의 시장이어서 저가에 기업을 인수할 기회가 많다”며 “수익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는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사모펀드 케이스톤파트너스의 유현갑 대표는 “기업재무안정 PEF와 일반 PEF를 구분하는 칸막이 규제를 없애야 한다”며 “PEF들이 자유롭게 투자 대상을 정할 수 있도록 하면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용석 산업은행 구조조정부문 부행장은 “구조조정에서 중요한 건 주주와 채권단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손실을 분담하는 관행이 확립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패널 토론의 좌장을 맡은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경영진의 신의성실 의무에 선제적 구조조정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

유창재/김태호/이지훈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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