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달러 사재기' 마라…'트럼프발 약달러'로 낭패 본다

입력 2017-04-16 18:31:14 | 수정 2017-04-17 03:04:09 | 지면정보 2017-04-17 A23면
9년 전 키코와 달리 '역키코' 우려
북핵 겨냥 달러 사재기 자제할 때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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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환위험 관리 실패 사례로 꼽는 ‘키코(KIKO)’ 사태가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락(달러 약세)할 것으로 예상한 수출 업체를 중심으로 환헤지를 했다. 하지만 ‘마진 콜(자본 부족)’을 당한 미국 금융회사의 디레버리지(투자자산 회수) 과정에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환차손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9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키코 사태의 정반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역(逆) 키코 사태’다. 2015년 12월 이후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달러 강세)할 것으로 우려한 수입업체를 중심으로 이번에는 반대로 환헤지를 걸어놨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자 상당 규모의 환차손을 입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달러 약세’를 선호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는 점이다. ‘강한 미국, 강한 달러’를 지향하는 공화당의 전통과 상반되는 주장이다. 트럼프의 발언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 총회를 앞둔 민감한 때 나온 것이어서 회원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는 ‘강세’보다 ‘약세’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교역상대국의 인위적인 평가절하에 따른 피해의식이 높기 때문이다. 취임 이후 달러인덱스는 ‘100’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호드릭프레스콧 필터로 구한 장기 추세에서 3% 이상 고평가된 수준이다.

앞으로 4년 동안 추진할 트럼프노믹스(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라도 달러 약세는 불가피하다. 대외적으로 최우선 순위를 두고 추진하는 보호주의 정책의 주목적은 무역적자를 축소하는 데 있다. 달러가 강세가 된다면 무역적자가 확대돼 보호주의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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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다. 모든 기업인은 높은 세율과 자국통화 강세, 행정규제를 싫어한다. 집권 기간에 성장률 목표 4%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부가가치 창출 주역인 기업인의 3대 고충을 덜어주는 것이 지름길이다. Fed의 계량모델인 ‘퍼버스(Ferbus=FRB+US)’에 따르면 달러가 10% 하락하면 2년 후 성장률이 0.75%포인트 높아지는 것으로 나온다. 그 어느 부양 수단보다 성장률 제고 효과가 크다.

미국 경제는 ‘쌍둥이 적자’라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 달러 강세로 보호주의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해 무역적자가 커지면 재정적자까지 확대된다. 트럼프의 최악의 시나리오인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미국의 재건’을 목표로 계획하고 있는 또 하나의 야심작 ‘뉴딜’과 ‘감세 정책’도 추진할 여지가 줄어든다.

이번에 트럼프의 달러 약세 발언은 저금리를 선호한다는 입장까지 뒷받침돼 그 어느 때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다. 이달 안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공석인 Fed 이사 3명을 임명해야 한다. 올해는 순번제인 지역 Fed 총재 중 금리결정 권한이 있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멤버가 비둘기파로 채워진 상태다.

FOMC 멤버 성향을 알 수 있는 블룸버그 정책지수를 보면 지난해 ‘-0.4’에서 올해는 ‘-0.6’으로 비둘기파 성향이 강해졌다. 이 지수의 밴드 폭은 ‘-2’에서 ‘+2’로 높을수록 매파 성향이 강해짐을 의미한다. 트럼프가 자신의 저금리 선호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비둘기파로 임명한다면 금리인상을 겨냥한 달러 강세 기대는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말 달러 예금은 600억달러가 넘어 601억4000만달러를 기록했다. 1997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다. 눈에 띄는 것은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때마다 달러 예금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Fed의 추가 금리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 기대가 남아 있거나 북핵 사태로 고조되는 지정학적 위험을 겨냥해 이기적으로 달러를 사들인 결과로 풀이된다.

곤혹스러운 것은 한국 외환당국이다. 역키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리면 트럼프 정부로부터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확률이 높아진다. 반대로 시장에 그대로 방치해 놓으면 트럼프의 달러 약세 발언으로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키코 사태 이상으로 환차손이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달러 투자는 수익률이 의외로 낮다. 다른 가격변수와 달리 환율은 통화 간 교환 비율로 근린궁핍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오르고 내릴 수 없다. 수수료도 비싸다. 중심국이 미국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쌓인다. 북핵 문제로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지는 틈을 타 달러 사재기에 나서는 움직임이 있으나 자제력과 균형감이 요구되는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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