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영의 벌어야 사는 사람들④

부자 PD서 가난한 창업 CEO로…"돈, 간절해야 온다"

입력 2015-10-14 10:31:21 | 수정 2015-10-14 10: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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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돈을 벌어야 했다. 먹고살기 위해 그래야 했다. '돈(money)보다 꿈(dream)이 먼저'라고 외치던 젊은 시절의 노래는 다시 들을 수 없다. 벌어야 사는 시대는 바빠야 정상이다. '안녕?'이 아니라 '바쁘지?'로 안부를 묻는다. 시인들은 가난이 슬픔이고 슬픔을 고통으로 느낀다고 한탄한다. 그래서 물어봤다. 당신한테 돈은 무엇입니까.

"봉급쟁이로 살다가 '돈이 없어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공포에 직면하게 됐다. 가계수입의 구조도 전부 바꿔야만 했다. '당장 다음달부터 벌어야 먹고 산다'는 심정으로 영업했고 창업했다. 정말 원하고 바라고 뛰어다니면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더 이상 부족하지 않도록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만큼 노력해야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도 안다."

10년 이상 홈쇼핑 프로듀서(PD)로 활동해오다 한솥밥을 먹어온 동료 PD한테도 '미친사람'이란 손가락질을 받으며 MD(머천다이저·merchandiser)로 전직해 일해온 이수연씨(41·가명). 그녀는 올해 2월 대기업 홈쇼핑에 입사한 지 15년여 만에 사표를 쓰고 바로 그 다음달 창업의 길로 뛰어들었다.

이미용(화장품·헤어·메이크업·바디) 업계에선 '청담동 마녀'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그녀는 청담동 헤어살롱 원장들을 줄세워 성공시킨 이미용계 '미다스의 손'으로 통했다. '거품 염색제' '청담동 헤어살롱 트리트먼트' '진동 파운데이션' '셀프 젤네일' '자동 헤어스타일링기' '레인보우 샴푸' 등이 모두 그녀의 '메가히트' 이미용품이다.

'청담동 마녀'는 올해 별칭을 딴 마스크팩을 앞세워 PD와 MD에 이은 '작은 CEO'로서 제 3의 인생을 리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가난하지만 부자를 꿈꾸는 40대 여성 CEO의 목소리는 인터뷰 내내 당찼다.

▶ 15년간 유명 홈쇼핑 PD와 MD로 살아왔다. 직장을 나올 때 두렵지 않았나.

"말도 못하게 무서웠다. 너무 두려워서 잠도 못 자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나오기 직전까지도 해외사업부에 관여하면서 탐방온 중국 MD들을 가르치는 등 남부럽지 않은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경험과 명예를 버리고 나오기가 솔직히 아까웠다. 적어도 매달 매출 3000만원은 적어내야 사무실 비용 내고 직원 월급도 줄 수 있는데 평생 한 달에 3000만원을 벌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막판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 창업 CEO로 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나.

"10년 전부터 연매출 70억원 정도의 중견기업 CEO로 사는 게 꿈이었다. 개인 비즈니스를 하려고 10년째 해오던 PD직을 내려놓고 MD로 명함을 바꿔 5년간 살았다. 영업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시기를 놓고 갈등하던 중 예상하지 못한 병이 가족에게 찾아왔다. 2013년 1월, 남편이 건강검진에서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임파선쪽으로 암조직이 번져 수술이 불가능했다. 3주에 한 번씩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한 번 치료에 250만원 정도 든다. 내성이 생기면 다른 약을 써야 하는데 보험 적용이 안 될 수 있다. 200만원짜리도 있고 600만원짜리도 있다."

▶ 가족의 병 때문에 창업을 결심했다는 말인가.

"맞다. 봉급자로 살면서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모든 걸 쏟아부어 창업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벼랑끝에 몰리며 CEO로서 삶을 선택했다. 내 가족이 돈이 없어서 죽을 수도 있는 병에 걸린 것이다."

▶ 당신에게 돈은 '가족을 향한 의리' 같다.

"나에게 돈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의리다. 한 가정의 아내로서,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딸의 유일한 엄마로서, 직원 두 명을 둔 새내기 CEO로서. 지치고 힘들 때가 왜 없을까.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결정했으니까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내가 죽으면 끝날 것 같지만 죽어지는 게 아니지 않나. 슬픈 얘기일 수 있지만 내 책임이니까 열심히 살아야 한다."

▶ 봉급쟁이로 살아오다 창업 CEO로 산다. 돈 버는 방법이 보일까.

"나야말로 지금도 벌어야 먹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은 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라고 확신한다. 창업을 하기 전에 MD로 뛰어다니면서 알게 된 중소기업 사장님들과 일부러 인터뷰했다. 성공비결을 묻고 다녔다. 하나 같이 돌아오는 대답이 '운이 좋았다'였다. 어떻게 100% 운으로 사업이 성공할까. 열심히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렇게 해야 '100% 운'이라는 것이 나에게도 찾아온다고 믿는다. 그 분들이 최선을 다해 일해온 걸 수년 간 옆에서 지켜봐서 안다. 돈은 고생한 만큼 벌린다고 생각한다."

▶ 성공한 부자는 전부 열심히 산 결과라고 보나.

"그렇다. 난 부자를 존중한다. 돈 많이 벌어서 건물 짓는 사람들을 보면서 처음엔 몹시 부러웠다. 하지만 저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과 엄청난 수업료를 치르고 살아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업해서 살아보니 눈 뜨면 출근이고 눈 감으면 퇴근이더라. 내 몸 관리도 철저히 해야 한다. CEO는 아파서도 안 된다. 부자라고 해서 거들먹거리고 다닐 필요도 없지만 가난한다고 해서 자랑거리도 아니지 않는가."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하다고 반문해 온다면.

"돈은 절대 그냥 얻어지지 않는 것 같다. 이 부분에서도 노력의 기준이 다르다고 본다. 100m만 걸어도 힘들어서 도저히 못 걷겠다는 이가 있는 반면에 42.195Km의 마라톤 완주를 끝내야 노력했다고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인생은 바라고 또 바라면 이룰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간절히 바라면 단순한 생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위해서 무엇이든 하고 있지 않겠는가. 내 몸과 머리가. 나 역시 지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바라고 또 바라면서 살아서다. 돈이든 무엇이든 원해서 끌어당겨야만 다가갈 수 있다."

▶ 그렇다면 돈은 쫓아야만 벌리는 것인가.

"돈을 쫓아서 살아오지 않았다. 내 인생을 리드하는 창조적인 일을 찾아다니면서 지냈다.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돈이 있으면 생활하는데 불편한 것들이 줄어들 수 있다는 생각뿐이지 많이 버는 게 목표가 아니란 얘기다. 돈이 많아서 회사를 차린 것이 아니다. 내 회사의 자본금은 5000만원이다. 돈도 없고 겁도 없이 사업을 하고 있는 지금도 너무 신기할 정도다. 돈은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는 것 같다. 열심히 달려가면 갑자기 나타나서 같이 따라오는 게 돈 같다. 두 팔 벌리고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 만큼은 확실하다."

▶ 하루하루 치열하게 사는 이유를 알고 싶다.

"개구리와 전갈 이야기가 생각난다. 옛날에 강을 건너고 싶어하는 전갈이 있었는데 수영을 못해서 개구리한테 부탁했다. 개구리는 전갈이 독침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전갈을 태우고 물 위를 헤엄쳤다. 물살이 거세지자 전갈은 중심을 잃고 개구리를 독침으로 찔렀다. 자신도 물에 빠져 죽을 줄 알면서도 천성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본성 같다. 남편이 암과 싸우고 있지만 이보다 앞선 2007년엔 내가 대장암 환자였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 장을 도려내지는 않았지만 3개월에 한 번씩 대장 내시경을 하면서 병마와 싸운 끝에 5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게을리 살 수 없었다."

양손에 쥐고 있던 안정적인 봉급과 사회적 지위를 단 번에 내려놓은 그녀는 가난한 CEO의 길이 무서운 동시에 행복하다고 말했다. 홈쇼핑 론칭 실패로 산더미처럼 쌓인 마스크팩을 발판으로 창업의 꿈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이 대표. 직원 두 명과 함께 사무실 셋방살이로 버티고 있지만 분명히 찾아올 '100% 운'을 기다리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힘들고 지치고 억울할 때가 왜 없을까.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다. 그렇지만 열심히 숨쉬는 것이 재미있고 즐겁다."

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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