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영의 벌어야 사는 사람들③

주식하던 어느 소방관의 '운수 좋은 날'

입력 2015-09-18 10:51:54 | 수정 2015-09-18 10: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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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돈을 벌어야 했다. 먹고살기 위해 그래야 했다. '돈(money)보다 꿈(dream)이 먼저'라고 외치던 젊은 시절의 노래는 다시 들을 수 없다. 벌어야 사는 시대는 바빠야 정상이다. '안녕?'이 아니라 '바쁘지?'로 안부를 묻는다. 시인들은 가난이 슬픔이고 슬픔을 고통으로 느낀다고 한탄한다. 그래서 물어봤다. 당신한테 돈은 무엇입니까.

"엄마는 죽기 전날 제주도엘 다녀온 것 같다. 혈액투석 도중에 잠시 깨어난 엄마는 문병 온 이모에게 '가족들끼리 놀러온 제주도까지 어떻게 왔느냐'면서 반가워했다. 다음날 새벽, 어머니는그곳에서 두 번 다시 병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불효자였다."

경기도 남부지역 한 소방서에서 화재조사분석사로 일하고 있는 소방관 이현석(37·가명)씨는 3년 전인 2012년 3월 중순, 늘 제주도에 가고 싶어했던 어머니를 영영 잃었다. '다리가 아프다'면서 아들에게 '좋은 신발' 한 켤레 사 달라고 조르던 이씨의 어머니는 23만원짜리 단화를 세 번 신었다.

"어느 날 전화통화를 하는데 다리가 자꾸 아프다고 했다. 한 평생 1~2만원짜리 신발만 신고 다녀서 발이 아픈가보다 했다. 심장에서 다리로 피가 잘 안 내려와서 괴사되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서른 살, 비교적 늦은 나이에 공부해 불과 1년여 만에 소방공무원이 된 이씨. 그는 20대를 꼬박 경기도 파주에서 가구 공장 일꾼으로 살았다. 가구에 종이 무늬를 입히는 인쇄 공장이었다. 1999년 서울 소재 K대학교에 특차 입학했지만 졸업장은 받을 수 없었다. 등록금이 부족했고, 어머니 병원비와 가족 생활비를 보태야 했다.

"당시에 대학 지원에 필요한 원서비용이 8만원 정도였던 기억이다. 3~4군데 복수 지원할 돈이 없었다. 1군데만 넣어서 대학엘 붙어야 했다. 입학 첫 해 등록금은 외할머니가 도와주신 걸로 안다. 그런데 학교에 갈 돈이 없었다. 다음날 차비가 없어 결석을 종종 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이씨는 빌라에서 더 작은 빌라로, 다시 반지하 방으로 셀 수 없이 이사를 다녔다. 집 짓는 일을 해오던 아버지가 모든 돈을 투자한 주유소 사업이 실패한데다 IMF 금융위기로 일자리조차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즈음, 어머니는 하숙집을 운영하면서 생활비를 도맡아 벌었지만, 당뇨와 고혈압이 심해지면서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엘 갔다. 다행히 3살 터울 누나가 취직을 해서 생활비를 벌었다. 입 하나를 줄여야 했다. 어머니의 병은 이 때부터 깊어진 것 같다. 병원비를 아끼려고 혼자서 '끙끙' 앓았던 게 아닐까 싶다."

군을 제대한 직후 이씨의 어머니는 손가락을 다쳤다. 당뇨합병증 때문인지 치료가 되지 않았고, 손가락 절단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신용카드를 만들어서 수술비부터 냈다. 카드비용을 구하기 위해 인쇄 공장에 들어갔다. 대학은 2년 뒤 자퇴 처리됐다. 가구 무늬 종이에 잉크를 새겨 합판에 붙이는 공장이었다. 6개월 동안 잉크 배합하고 실린더 갈아끼우는 일들을 해오다 영업을 뛰었다. 그렇게 공장에서 20대를 보냈다."

이씨는 30세가 되던 해 공장을 나와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기로 마음 먹는다. 5년 동안 월급 150만원을 받아 가족 병원비와 생활비를 빼고 차곡차곡 모아둔 300만원. 이 돈으로 1년은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영업을 뛰다보니 가구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2~3년 앞도 보이지 않았다. 중국 제품이 쏟아져 들어오고 가격경쟁력을 가질 만큼 기술력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영업상 위기를 보고해도 사장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래 있을 곳이 아니구나' 다짐했다. 공장과 달리 나는 돈 때문에 절박했다."

300만원으로 주어진 1년, 이씨는 아침 7시에 도서관에 나가 밤 10시까지 단 다섯 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른 살 후반에 공장에서 나와 이듬해 4월쯤 본 첫 공무원 시험에서 0.2점, 딱 1문제 차이로 떨어졌다고 한다.

"나는 선택할 수 없었다. 1년 안에 무조건 공무원이 되어야 했다. 교육행정직에 떨어지자 마자 인천지역에서 뽑은 소방공무원에 응시했다. 5과목중 교육행정과 4과목이 겹쳤기 때문에 1과목만 다시 공부하면 됐다. 필기에 합격했는데 이번엔 실기에서 떨어졌다. 멀리뛰기에서 2미터38센티미터를 넘어야 했는데 2미터20센티미터에 그쳤다. 세 번째 도전한 2010년 3월, 경기도 소방공무원에 드디어 합격했다."

아들이 소방관이 된 그 해, 이씨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다리 절단 수술을 기다리며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옮겨다니던 어머니는 생전 처음으로 대학병원이란 곳에 입원한 지 한 달 보름 만에 눈을 감았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 거짓말처럼 모든 일이 술술 풀렸다"며 애써 웃어보이던 그에게서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떠올랐다. 이후로 그는 경기 북부와 남부 소방서를 돌아다니면서 119 구급대원과 상황실을 거쳐 화재진압 대원으로, 지금은 화재조사분석과에서 조사일을 맡고 있다. 6년전 9급 공무원으로 입사한 이씨는 불과 2년여 만에 8급 승진에 성공했고, 다음달 말 7급 승진에 도전하고 있다.

▶ 맹목적으로 돈 벌려고 주식에 빠져 살았다고 들었다.

"맞다. 꼬박꼬박 봉급이 들어오니까 소위 '대박'을 꿈꾸기도 했었다. 가난이라면 정말 지긋지긋하다. 좀 많이 벌어서 집안을 일으키고 싶었다. 취업하고 주변에서 '몇 백 만원으로 몇 천 만원을 벌었다더라'는 말을 들으니 나에게도 가능성이 있다고 착각했다. 1년 정도 점심시간에 밥 먹는 시간을 아껴서 주식 공부도 하고 투자도 했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몸이 나빠지면서 주식을 들여다 볼 겨를이 없었다. 사서 까맣게 잊고 지낸 주식도 여전히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지금은 요행을 바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이전보다 돈이 생겼다. 행복한가.

"대학 다닐 때 꿈이 '2~3만원 들어있는 지갑'이었다.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불러 낼 수 없었다. 다음날 차비를 걱정하지 않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20대의 내가 그토록 바라던 돈 든 지갑을 가지고 다니는데 이상하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안 든다. 단지 불편하지 않다고 행복한 것은 아닌 것 같다."

▶ 돈 때문에 어머니를 잃었다고 생각하는지.

"그렇다. 돈 때문에 어머니가 평생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아버지와 함께 한 건강검진에서 췌장에 혹이 발견됐다. 어머니 역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제때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돈만 있었다면 어머니의 병은 고칠 수 있었다고 본다."

▶ 살아보고 싶은 인생을 산 기억이 있나.

"군대를 다녀온 24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주도적인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 오로지 돈만 벌어야 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다소 편해진 하루하루를 살아오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하고 자주 생각해 본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이들이 늘 부러웠다. 차 안에서 혼자 음악을 들으면서 노래를 따라부를 때가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작년에 노래교실을 다녔다. 6개월 정도 일주일에 두 번 다녔는데 그 시간 만큼은 정말 남 부럽지 않게 행복했다. 지금은 화재조사부로 옮기면서 업무가 많아 다니지 못하고 있다."

▶ 당신이 겪어온 돈은 무엇인가.

"나는 돈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할 자격도 없다. 다만 돈이란 것이 가지고 있으면 편하고 여러가지 위기상황에 대처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돈이 없으면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다. 이와는 반대로 하나 분명한 것은 돈이 행복은 아닌 것 같다. 이 정도만 있으면 하늘을 날 듯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냥 좀 편하다' 이상의 감정이 나질 않는다. 오히려 10여년 전 반지하 방에서 네 가족이 모여 통닭 두 마리 놓고 TV 보면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장면이 자주 떠오른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나에게 다시 올 수 없는 행복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지금이 행복이라고 믿었는데 지금은 그때가 행복인 것 같다. 잘 모르겠다."

▶ 여전히 돈을 모으고 있나. 돈에 대해 한 마디 해 달라.

"당연히 모은다. 어머니를 잃고, 해보고 싶은 거 못하고 산 그 생활. 두 번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 행복했던 장면도 많지만 힘든 기억도 당연히 많으니까. 어머니처럼 아버지를 돈 때문에 잃을 수 없다는 다짐도 크다. 없을 땐 돈은 정말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 동안 돈에 대한 기대를 너무 키워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돈과 행복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고대에 돈 많은 왕들이 왜 쾌락을 좇았을까 철학자들이 진리를 탐구하려고 매달렸는지 이해가 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는 돈 이상의 어떤 행복을 찾아보고 싶다."

K대학교 인문학부로 입학해 주전공으로 철학을 골랐던 소방관. 형편상 책과 이론으로 철학을 다 공부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나머지 인생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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