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수의 자본시장 25시 ⑥

존 리 "한국 자본시장 '미얀마' 수준…운용철학 투자문화 확 바꿔야"

입력 2015-06-24 07:53:38 | 수정 2015-08-11 13: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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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수의 자본시장 25시] "10년, 20년 장기투자하는 주식투자자에게 하루 가격제한폭이 ±30%로 확대되는 건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가격제한폭은 펀더멘털(기초 경제여건, 기업 가치와 성장성)과 관련된 이슈가 아니거든요."

코스닥과 코스피 가격제한폭이 ±15%에서 ±30%로 확대된 지 10일째인 24일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57·한국명 이정복)는 이렇게 말했다. ‘장기투자 전도사’인 그에게 가격제한폭 확대는 큰 변수가 아니다. 펀더멘털을 중시하는 그는 “주식투자는 ‘사고파는’ 게 아니라 ‘사서 묻어두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투자하는 기업과 장기간 동업하는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한국 투자 첫 외국인 전용펀드인 코리아펀드(스커더인베스트먼트 운용, 1991~2005, 누적 수익률 1594%)를 운용해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한때 세계 양대 헤지펀드로 유명했던 타이거펀드의 빌 황, 인터내셔널인베스트먼트어드바이저리(IIA)의 용 킴 등과 함께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주목받았던 한국계 펀드매니저다. 하지만 짧은 기간 공격적인 투자를 하며 시세 차익을 노리던 그들과 운용철학이 달랐다.

지난해 1월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로 취임한 그는 ‘메리츠코리아펀드1호’ 수익률을 1년 반 만에 업계 최고 수준(2013년 7월8일~2015년 5월31일 누적수익률 48.91%, 코스피 대비 36.87% 초과)으로 끌어올렸다. 올 상반기 주가 상승세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때그때 매매 타이밍에 맞춰 사고팔아 시세차익을 내려고 하는 ‘모멘텀 투자’는 사람을 황폐하게 한다. 기업지배구조와 펀더멘털이 좋은 기업에 장기투자하는 게 부자 되는 길이다”라는 그의 운용철학이 통한 것이다.

한국 자본시장의 투자 문화와 운용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고 설파하는 존 리 대표. 그의 강연과 협력 파트너 모임을 동행 취재했다.

◈“주식은 사고파는 게 아니라 사서 묻어두는 것”

한국 자본시장의 철학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기사 이미지 보기

한국 자본시장의 철학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존이 자전거를 잃어버렸다고 하네.”
“그래? 어떤 자전거인데.”
“국산 전기자전거인데 80만원 정도 하나봐”
“그러면 그렇지! 존이 100만원 넘는 자전거를 살 리가 없지.”

윤여진 EOS파트너스 대표(57)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대학 동기동창(연세대 경제학과 78학번)인 존 리 대표의 검소한 생활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옆자리에 있던 황호영 KIDB자금중개 부사장도 “맞아, 그 친구 비싼 거 안 사지”라며 맞장구를 쳤다. 메리츠자산운용이 최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로 협력 파트너를 초청해 연 ‘메리츠 나이트’ 행사에서였다. 바로 옆 조금 떨어진 자리에선 존 리 대표가 은행과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 10여명과 함께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 사교육이 나라를 망친다. 자녀 교육비 때문에 노후 준비를 못 한다고들 한다. 비싼 과외비를 들여 자녀를 가르쳐서 그들이 서울대 가고 졸업해서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최악이다. 비용을 생각하면 그렇다. 정형화된 교육은 창의성을 짓밟는다. 유대인은 경제 개념을 어릴 때부터 배운다. 어렸을 때 과외할 돈으로 주식을 사게 해서 기업과 경제에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 그래야 창업 유전자(DNA)가 생긴다. 여윳돈으로 주식을 사서 10년, 20년 장기 투자해야 한다. 주식은 매매가 아닌 매수 대상이다. 주식을 사는 것은 기업과 동업자가 되는 것이다.”

삼성증권 IBK투자증권 KB국민은행에서 온 PB들은 “그렇죠” “맞아요”라며 존 리 대표의 주장에 공감했다. 존 리 대표는 PB들에게 자신의 운용철학을 이야기하면서 가정이나 학교에서 투자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도 역설했다. 본인도 자동차를 사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여윳돈으로 펀드에 투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주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엄마! 주식 사줘!’라는 제목으로 책을 낼 것이란 계획도 밝혔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경희 삼성증권 상무는 “PB로서 존 리 대표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러운 자리였다”고 말했다.

◈“주식이 위험? 노후 준비엔 은행 예금이 가장 위험”

같은 날 오전 8시 서울 여의도동 심팩빌딩에 있는 현대증권 회의실. 약 50명에 이르는 퇴직연금본부 직원들이 존 리 대표의 강연을 듣고 있었다.

“한국에 와보니 주식하는 젊은이가 없다. 젊었을 때 맥주 마실 돈이나 화장품 명품 살 돈, 여행할 돈이 있으면 아껴서 주식이나 펀드를 사라. 월급의 5~10% 정도 여윳돈으로 무조건 주식을 사서 10년, 20년 넘게 투자해야 노후가 든든해지고 부자가 될 수 있다.”

존 리 대표는 이 자리에서도 역시 주식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에서는 주식을 위험자산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장 위험한 자산은 은행 예금이다. 여윳돈이 있으면 최대한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 원금보장형 상품이 가장 한심하다. 20년, 30년 후를 준비하는데 원금보장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퇴직연금 고객이 퇴직 후 받는 금액이 정해져 있는 DB(Defined Benefit·확정급여)형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 책임으로 운용성과에 따라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DC(Defined Contribution·확정기여)형으로 바꿔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 버는 방법은 노동을 하거나 자본가가 되는 것인데 주식을 사서 오래 갖고 있으면 자본가, 즉 부자가 될 수 있다. 주식투자를 해야 서바이벌할 수 있다.”

존 리 대표는 워런 버핏의 사례도 들었다.“버핏은 사탕회사 주식을 사면 친구들이 캔디를 사먹을 때마다 주머니에 돈이 들어온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질레트라는 면도기 회사를 샀다. 전 세계 남자들이 수염을 깎을 때마다 그의 돈이 불어난다. 워런 버핏이 굴린 펀드의 1년 평균 수익률은 17%밖에 안 된다. 그러나 그는 복리의 개념과 위력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자본의 속성을 파악한 것이다. 부자 되는 방법을 알았던 것이다.”

S화재 전무로 근무하던 지인의 실패담도 들려줬다.“그 분이 회사로부터 매년 주식을 받았는데 그 때마다 그 돈으로 술을 마셨다. 기념으로 세 장을 책갈피에 남겨 놓았는데 최근 딸에게 돈으로 바꿔오라고 하니 850만원을 가져왔다고 하더라. 그 순간 정신이 멍했다고 한다. 그동안 돈으로 바꿔 술을 마셨던 주식 수를 세어보니 지금까지 갖고 있었으면 100억원이 넘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그분은 그동안 100억원어치 술을 마신 것이다.”순간 청중에선 폭소가 터졌다.

강연을 듣는 사람은 주로 퇴직연금 담당자다. 존 리 대표는 “주식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며 “20~30년 뒤에 퇴직할 사람은 주식을 끊임없이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퇴직연금은 뭐든지 주식을 사야 하며 DC형으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객이 망하는 것을 보면 안 된다며 2년 뒤에 죽을 것이라면 DB형으로 해야 하지만 20~30년 뒤라면 DC형으로 해야 한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중간중간 주가가 폭락하면 ‘바겐세일’이라 생각하고 주식을 사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주식투자 문화에 대해 쓴소리도 던졌다. TV 드라마에서 주식하는 사람이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데 놀랐다고 한다. 퇴직연금 총액 가운데 주식투자 비중이 5%가 안 되는데 이는 미얀마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많은 사람이 주식을 카지노처럼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주식하면 안 된다는 투자 문화 때문에 주식값이 싸다는 이점도 있으며 앞으로 한국의 퇴직연금도 DC형 중심으로 주식투자 비중이 더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주식은 사고파는 게 아니라는 점도 운용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스커더에서 코리아펀드를 운용할 때 15년 동안 주식매매 회전율이 14%였다. 종목당 보유기간이 평균 7년 정도다. 그 결과 자산은 15년 만에 15배로 불었다. 메리츠코리아펀드도 올 들어 회전율이 10%에 불과하다고 소개했다. 전임 펀드매니저들이 운용했던 것을 보니 회전율이 600%에 이르렀다고 한다. 회전율이 높은 건 카지노를 하는 것과 같다고 그는 지적했다. 한국 운용사들이 단기적인 시세차익과 수수료 수입 등을 의식해 펀드 회전율을 높게 가져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고객을 위하는 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현대증권 직원을 대상으로 기사 이미지 보기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현대증권 직원을 대상으로 "퇴직연금은 DB형에서 DC형으로 바꿔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지식산업 주식 사야…우리 포트폴리오 절반 이상이 중소기업”

“그럼 어떤 종목을 사야 합니까. 종목이 아니면 업종이라도 이야기해주세요.”

강연을 듣고 있던 김동기 현대증권 퇴직연금본부장이 직설화법으로 물어봤다. 존 리 대표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20년 동안 운용을 함께해온 권오진 전무 등 운용팀이 메리츠코리아펀드 등을 운용하고 있다. 우리 포트폴리오를 보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가 없다.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10년 이상 동업한다고 생각하고 사들일 수 있는 업종은 지식산업이다. 헬스케어 인터넷 등 시장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분야다. 홈쇼핑은 잘 모르겠다. 오프라인에 있던 비효율을 메우는 과정이 중요하다. 가령 알리바바 에어비앤비 페이팔 등처럼 예전에 전혀 들어보지 않은 기업이 한국에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메리츠자산운용에서 투자한 종목 가운데 절반 이상은 투자자들이 대부분 처음 들어보는 회사일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놀랍게도 그런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것. 중국과 경쟁하는 분야에선 종업원이 많이 필요하거나 소품종 대량생산하는 대기업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중국과의 경쟁 대열에서 벗어나 있는 기업에 승산이 있을 거라는 판단이다. 경쟁사 대비 비교우위, 산업의 진입장벽 등을 잘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이 앞으로 살 길은 중소기업이며 기업 생태계에도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상급등과 판단착오, 새 투자 대상이 있을 때만 팔아라"

친구랑 동업할 때 회사가 잘되면 팔 이유가 없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존 리 대표는 그러나 살다보면 변화가 있고 환경도 변하니 주식을 팔아야 할 때가 있는 것뿐이지 근본적으로 팔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언제 팔아야 할까. 그는 △이유 없이 주가가 크게 올랐을 때(가령 3만원짜리 주식이 펀더멘털은 그대로인데 정치테마를 업고 9만원으로 올랐을 경우) △틀렸다고 생각할 때(기업가치를 과대평가했거나 기술 장벽이 무너졌을 때) △현금이 없는데 매우 좋은 다른 투자 대상이 생겼을 때 등 세 가지 경우에만 주식을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대수익률이나 손절매라는 프레임(고정적인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그는 조언했다. 기대수익률을 20%로 정해놓고 20% 상승하면 파는 것은 ‘바보 짓’이라고 지적했다. 투자라는 것은 ‘아트’고 투자를 수치화하는 순간 프레임에 갇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주가가 두 배로 올랐다 해도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그 회사 장사가 잘되면 팔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장사는 그저 그런데 갑자기 두 배로 주가가 오르면 그땐 팔아야 한다는 것. 손절매도 마찬가지다. 장사가 잘되는데 주가가 빠졌다고 무조건 손절매해서는 안 된다. 원인을 찾아 길게 봐서 좋지 않을 때 팔아야 한다.

동업한다는 생각으로 주식을 사는 사람은 투자자요, 사고팔아 시세차익을 내려는 사람은 투기자라고 그는 규정했다. 동업할 때 제일 중요한 게 최고경영자(CEO)의 인간성, 즉 경영진의 자질(이 비중이 70~80%라고 했다)과 기업지배구조다. 이를 보고 주식을 사는 게 투자이며, TV에 나오는 차트를 보고 모멘텀을 찾아 매매하면 그것은 투기라는 설명이다. 지배구조가 좋은 종목으로는 아모레퍼시픽을 꼽았다. 자회사를 만들어 내부거래를 통해 부를 유출하지 않고 시가총액을 늘려 주주를 감동시킨 대표적인 사례라는 해석이다.

◈“미국의 노동·자본 유연성 경쟁력 배워야"

존 리 대표는 한국 자본시장이 낙후됐다고 평가했다. 주식투자 문화도 그렇고, 운용사들의 펀드 운용에도 고객 돈을 불리겠다는 생각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회전율을 높여 수수료나 운용보수 수입을 올리는 경향이 짙다는 설명이다. 그는 금융회사의 존재 이유는 ‘고객 자산 불리기’라고 재차 강조했다. 미국의 노동과 자본의 유연성을 비교해 그가 던진 말은 자본시장과 산업현장에 큰 울림을 준다.

“미국이 경쟁력있는 게 노동과 자본의 유연성이다. 근로자의 해고, 재취업이 쉽고 자본이 다양하다. 안전한 금융상품부터 극단적인 위험투자를 하는 자금까지 고루 갖췄다. 그러니까 벤처기업이 생기고 창업 초기단계 투자가 이뤄진다. 금융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동차산업도 일본에 눌렸지만 미국이 여전히 강대국인 이유가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곳으로 자본과 노동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요즘 핀테크(금융+기술)를 한다는데 이런 식으론 안 된다. 주식투자를 ‘겜블링’이라 생각하고 퇴직연금을 DB형과 은행 예금에 넣는 문화에서는 핀테크가 발전할 수 없다. 미국은 금융자산의 70~80%가 주식이다. 본인인증서를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핀테크를 할까. (한국 자본시장의 발전은) 철학의 문제이고 문화의 문제다.”

글·사진=최명수 한경닷컴 뉴스국 부국장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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